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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이유 - 김영하 ( 리뷰, 후기, 줄거리, 요약, 문장수집,좋은구절 )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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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이유 - 김영하 ( 리뷰, 후기, 줄거리, 요약, 문장수집,좋은구절 )

lovemyself92 2019. 7. 9. 11:12

 

 

 

 

 

 

풀리지 않는 난제들로부터 도망치고 싶을 때

소란한 일상으로부터 벗어나 홀로 고요하고 싶을 때

예기치 못한 마주침과 깨달음이 절실하게 느껴질 때

그리하여 매순간, 우리는 여행을 소망한다

 

 

 

 

 

 

 

 

 

 

 

 

 

 

 

 

 

 

 

 

 

 

 

 

 

 

 

 

 

 

 

#1.

여행기란 본질적으로 무엇일까?

여행의 성공이라는 목적을 향해 집을 떠난 주인공이 이런저런 시련을 겪다가 원래 성취하고자 했던 것과 다른 어떤 것을 얻어서 출발점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주인공은 원래 찾으려던 것과 전혀 다른 것, 훨씬 중요한 어떤 것을 얻는다는 것이다. 대체로 그것은 깨달음이다. 길가메시 서사시의 주인공은 불사의 비법 대신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통찰에 이른다.

오랜 고전 속의 오디세우스는 인간의 삶은 매우 연약한 기반위에 위태롭게 존재한다는 것, 환각과 미망으로 얻은 쾌락은 진정한 행복이 아니라는 것 등을 깨닫게 된다.

우리는 명확한, 외면적인 목표를 가지고 여행을 떠난다. 이런 목표는 주변 사람 누구에게나 쉽게 말할 수 있는 것들이다.

하와이에 가서 서핑을 배우겠다. 치앙마이에서 트레킹을 하겠다. 유럽 전역을 떠돌며 미술관을 둘러보겠다 같은 것들.

이런 목표를 이루기 위해 우리는 열심히 준비한다. 여행을 준비하는 단계에서 뜻밖의 사실이나 예상치 못한 실패, 좌절, 엉뚱한 결과를 의도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내면에는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하는 강력한 바람이 있다.

여행을 통해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되고, 자신과 세계에 대한 놀라운 깨달음을 얻게 되는 것, 그런 마법적 순간을 경험하는 것, 바로 그것이다.                                                                                                                                                                                                                                                        

 

 

 

 

 

 

 

 

 

 

 

 

 

 

 

 

 

#2

문학은 어떻게 내 삶을 구했는가에서 데이비드 실즈는 이렇게 말한다.

"고통은 수시로 사람들이 사는 장소와 연관되고, 그래서 그들은 여행의 필요성을 느끼는데, 그것은 행복을 찾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의 슬픔을 몽땅 흡수한 것처럼 보이는 물건들로부터 달아나기 위해서다."

잠깐 머무는 호텔에서 우리는 슬픔을 몽땅 흡수한 것처럼 보이는 물건들로부터 완벽하게 자유롭다.

호텔에선 언제나 삶이 리셋되는 기분이다. 

이전 투숙객의 기억은 물론이거니와 내가 전날 남겼던 생활의 흔적도 지운다. 삶이 부과하는 문제가 까다로울수록 나는 여행을 더 갈망했다. 그것은 리셋에 대한 희망이었을 것이다. 풀리지 않는 삶의 난제들과 맞서기도 해야겠지만, 가끔은 달아나는 것도 필요하다. 기억이 소거된 작은 호텔방의 순백색 시트 위에 누워 인생이 다시 시작되는 것 같은 느낌에 사로잡힐 때, 보이지 않는 적과 맞설 에너지가 조금씩 다시 차오르는 기분이 들 때, 그게 단지 기분만은 아니라는 것을 아마 경험해본 사람은 알 것이다.

 

 

 

 

 

 

 

 

 

 

 

 

 

 

 

 

#3

영감을 얻기 위해서 혹은 글을 쓰기 위해서 여행을 떠나지는 않는다. 여행은 오히려 그것들과 멀어지기 위해 떠나는 것이다. 격렬한 운동으로 다른 어떤 것도 생각 할 수 없을 때 마침내 정신에 편안함이 찾아오듯이, 잡념이 사라지는 곳, 모국어가 들리지 않는 땅에서 때로 평화를 느낀다. 모국어가 지금의 나를 만들었지만, 이제 그 언어의 사소한 뉘앙스와 기색, 기미와 ,정취, 발화자의 숨은 의도를 너무나 잘 감지하게 되었고, 그 안에서 진정한 고요와 안식을 누리기 어려워졌다. 모국어가 때로 나를 할퀴고, 상처내고, 고문하기도 한다. 

 

 

 

 

 

 

 

 

 

 

 

 

 

 

 

 

 

 

 

 

 

 

 

 

 

 

 

 

 

 

 

 

 

#4

여행하는 동안에는 모든 게 현재시제로 서술된다. 과적 픽업트럭에 실려 이동하고, 오토바이 뒷자리에 타고 밀림 속으로 들어가고, 갑자기 나타난 거대한 유적의 규모와 그 유적을 부수어버릴 듯 맹렬히 자라고 있는 나무의 위용에 압도된다.

이 모든 것을 경험하는 나라는 주체가 있지만, 그 주제를 초월하는 생생한 현재가 바로 눈 앞에 있다.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련, 미래에 대한 불안과 걱정은 원경으로 물러난다. 범속한 인간이 초월을 경험하는 순간이다.

이러한 초월의 경험은 시간이 충분히 흐른 뒤에야 언어로 기술할 수 있다. 언어로 옮겨진 후에야 비로소 그것은 '생각'이 되어 유통된다. 생각을 따라 경험하기도 하고, 경험이 생각을 끌어내기도 한다. 현재의 경험이 미래의 생각으로 정리되고, 그 생각의 결과로 다시 움직이게 된다. 

보통의 인간들 역시 현재를 살아가지만 머릿속은 과거와 미래에 대한 후회와 불안으로 가득하다. 여행은 그런 우리를 이미 지나가버린 과거와 아직 오지 않은 미래로부터 끌어내 현재로 데려다놓는다. 여행이 끝나면, 우리는 그 경험들 중에서 의미 있는 것들을 생각으로 바꿔 저장한다. 길 위의 날들이 쌓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또다시 어딘가로 떠나라고, 다시 현재를, 오직 현재를 살아가라고 등을 떠밀고 있다.

 

 

 

 

 

 

 

 

 

 

 

 

 

 

 

 

 

 

 

 

 

 

 

 

 

 

 

 

 

 

 

 

 

 

 

 

 

 

 

 

 

#5

 

여행은 자기 결정으로 한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떠나야 하는 이주자와 자기 결정에 따라 여행하는 자가 보는 풍경은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느끼는 것은 확연히 다를 수 밖에 없다. 이주자는 일상을 살아가는 반면 여행자는 정제된 환상을 경험하고 있다고도 말할 수 있다.

 

 

 

 

 

 

 

 

우리는 자신들의 삶만으로도 정신이 하나도 없고 하루하루 닥쳐오는 일들을 처리하기에도 벅차다 삶이 끝없는 이주일 때, 여행은 사치일 것이다. 대학 졸업 후 유럽으로 배낭여행을 떠났을 때, 아침에 산 바게트 빵 하나로 세 끼를 때워야 할 정도로 여유가 없었지만, 그제야 나는 비로소 진짜 여행이 가져다 주는 행복감과 자유로움을 알게 되었다. 이것은 이주와는 다른 경험이었다. 이것은 그 누구의 것도 아닌 바로 나의 여행이었다. 매순간 내가 내 삶의 주인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지금도 나는 비행기가 힘차게 활주로를 박차고 인천공항을 이륙하는 순간마다 삶에 대한 통제력을 회복하는 기분이든다. 내 삶이 온전히 나만의 것이라는 내면의 목소리를 다시 듣게 되는 것도 바로 그 순간이다.

 

 

 

 

 

 

 

 

 

이주와 여행의 관계는 마치 현실과 소설의 관계와 같다. 현실을 어지럽고 복잡하고 무질서하다. 현실은 줄거리가 없다.  이야기는 다르다. 현실과 비슷한 일이 일어나지만 질서가 있다.  별똥별은 운석이 되어 지붕 위로 떨어질 수 있지만, 현실과는 달리 이런 사건들은 주인공의 삶과 인생에 중대한 의미를 부여한다. 이야기를 통해 인간은 현실에서 무질서하게 일어나는 여러일들을 어떻게 받아들어야 할지를 배운다. 죽음과 재난, 사랑과 배신 같은 일들이 우리 의지와 무관하게 닥쳐올 때, 우리는 자신의 내면을 지켜내야 하고 그럴 때 이야기가 우리에게 심리적 틀을 제공하는 것이다.

소설은 우리를 다른 세계로 끌어들인다. 여행도 마찬가지다. 독자와 여행자 모두 내면의 변화를 겪는다. 그게 무엇인지는 당장은 알지 못한다. 그것은 일상으로 복귀할 때가 되어서야 천천히 모습을 드러낸다. 

내가 살던 동네가 다르게 보이고 낯설게 느껴진다. 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감각들이 되살아난다. 

거기서 우리 몸은 세상을 다시 느끼기 시작하고 경험들은 연결되고 통합되며 우리의 정신은 한껏 고양된다. 일상을 여행할 힘을 얻게 되는 것이다. 어둠이 빛의 부재라면, 여행은 일상의 부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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